혁명적인 행동


 옛날 예수는 회당에 차려져 있는 장사꾼들의 진열대들을 뒤엎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뒤엎을 것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비폭력적 혁명아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폭력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행동해야 합니다.  비폭력적이지만 열정적으로, 비폭력적이지만 단호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날 누가 예수를 두고 폭력적이었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는 장사꾼들을 쫓아냈습니다. 

마호메트는 고국에서 추방당했습니다.  후에 그는 검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폭력을 쓰지 않고 사람들이 그를 존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초기 불교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수많은 공격을 받았고 무시당했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쓰지 않았지만 무예를 발전시킨 사람들은 바로 이들입니다. 

항상 소수파 속에서 의식이 발전해왔습니다.  정신성이 흘러넘치는 데는 언제나 소수파였지요.  부처 생전에 불교신도가 되고 예수 생전에 기독교신도가 된 사람들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의 모든 예언자들과 메시아들의 메시지는 모두 곧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정교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가 도착하기 전에 스스로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세기에 여전히 기독교도로 머문다는 것은 구시대에 자신을 가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수나 부처가 있다면 그들은 라엘리안이 될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가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앞선 메시지를 갖고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마호메트가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했을 때도 같은 이유로 그를 도시 밖으로 추방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예언자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 그를 따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것입니다.  이 한발 앞선 사람들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가장 적합한 가장 혁명적인 사람들로서, 그들이 시대를 이끄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인류를 위해서라면 그들의 직장도, 친구도, 재산도 모두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간들이 저 우주 어딘가에 자신보다 더 진보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또한 인간들은 자신이 이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고 또 이 우주에서 가장 뛰어나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겸손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이토록 공격적이고 또 사랑과 동정심이 부족한데도 이 우주에서 최고의 존재라면, 그래서 이 우주에서 우리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들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아무도 미래를 알 수가 없습니다.”


- 마이트레야 라엘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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