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백신은 암을 예방하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백신으로 주목받았던 미국 제약 기업 '모더나'가 있다. 팬데믹 이후 수년간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잊혔던 이 기업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8월 19일, 모더나 주가는 하루만에 2.8배 가까이 뛰어 174.38달러에 마감했다. 전날 종가는 62.96달러였다. 개인 맞 춤형 '암 백신'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임상 3상 시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들을 때마다 혹시 암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노심초사하는 40대 이상이라면 희소식에 어깨가 들썩였을 법하다. 주가 폭등부터가 암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오해부터 풀자면 이름과 달리 모더나의 암 백신은 암을 예방하는 약이 아니다.
암 예방이 아니라 암 '소탕'
정확하게 말하자면, 암 백신은 암의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을 주는 약이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몸속에서는 수많은 세포가 실시간으로 분열한다. 그 가운데 몇몇은 암세포로 자랄 수 있는 돌연변이를 안고 있다. 다행히 그런 돌연변이 대부분은 몸속의 면역세포가 귀신같이 찾아서 없앤다. 우리를 괴롭히는 암세포는 그런 돌연변이 가운데 면역세포를 속이는 능력을 획득한 것이다. 창의적인 과학자 몇몇이 이 대목에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몸속에 똬리를 튼 암세포에는 정상세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좀비' 단백질이 들어 있다. 이 암세포 좀비 단백질을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골칫거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나중에 암세포가 몸에 똬리를 틀려고 시도할 때마다 면역세포는 곧바로 살생부에 오른 좀비 단백질을 기억하고서, 그것이 포함된 암세포부터 우선 제거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수술 후 재발을 걱정하는 암 환자에게는 희소식이다. 수술로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를 걷어내도 몸속에는 흩어진 암 세포가 남아 있을 수 있다. CT로도 잡히지 않는 이 잔당이 몇 달, 몇 년 뒤 자라난 것이 재발이다. 암 백신이 노리는 표적이 이것이다. 이렇게 숨어 있는 잔당을 살생부에 올렸다가 눈에 띄면 곧바로 제거해 재발을 막는다.
살생부에 오른 '좀비 단백질'을 찾아라
이런 원리를 알고 나면, 이번에 모더나가 개발해 임상 3상 시험에 성공한 mRNA(메신저 RNA) 암 백신 '인티스메란(Intismeran)'의 성과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모더나는 이 약이 재발을 얼마나 막아주는지를 환자 1137 명에게서 확인했다. 미국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피부암인 흑색종에 걸려 제거 수술을 받은, 재발 위험이 큰 환자들이었다.
우선 1137명 개인별로 처음 흑색종을 앓았을 때 떼어낸 암세포 안의 좀비 단백질을 찾았다. 그러고 나서 그 좀비 단백질 조각이 환자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도록 주입했다. 일단 좀비 단백질 조각이 몸속에서 만들어지면 면역세포는 그것을 곧바로 제거하고 살생부에 올려 기억해둔다.
나중에 그 환자의 몸속에서 흑색종이 재발하려면 그 암세포에 포함된 좀비 단백질이 합성돼야 한다. 이미 그 좀비 단백질은 살생부에 올랐기 때문에 면역세포는 활동의 기미가 보이자마자 제거에 나선다. 결국 암세포가 몸 속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제거당하니 재발 확률이 낮아진다.
모더나는 이 임상시험을 진행하며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도 함께 투여했다. 키트루다는 암세포를 면역세포가 찾아내서 제거하도록 돕는, 흑색종을 포함한 여러 암에 널리 쓰이는 항암제다. 이번 임상시험은 키트루다만 투여한 환자와 비교했을 때 이 둘을 섞어 쓴 환자가 암 재발까지의 기간은 늘고 다른 장기로 전이될 위험은 낮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코로나가 밀어둔 모더나의 '본업'
이번 희소식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모더나가 머크와 손잡고 맞춤형 암 백신 개발에 착수한 것은 팬데믹보다 4년 앞선 2016년이었다. 2020년 신종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자 급히 코로나19 백신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번 성공은 모더나의 화려한 변신이 아니라, 팬데믹에 밀려 뒤로 갔던 본업으로의 복귀에 가깝다.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헝가리 출신 미국 과학자 카탈린 카리코와 드루와이스먼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은 mRNA를 몸속에 넣어도 면역계가 침입자로 오인해 염증을 일으키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특허 사용권을 받아간 곳이 모더나와 독일 회사 바이오엔테크다. 그렇게 암 백신을 개발하며 시행착오를 겪던 중 팬데믹이 발생했다. 모더나와 바이오엔테크는 곧바로 암세포의 좀비 단백질 대신 코로나바이러스 단백질 조각을 몸 속에서 합성하게 하는 mRNA 백신 개발로 전환했다.
그 결과 팬데믹 발발 1년도 안 돼 모더나와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이 등장할 수 있었다. 이제 암 백신 앞에 'mRNA'가 붙은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좀비 단백질 조각이 우리 몸속에서 만들어지려면 그 유전자 설계도를 몸속에 전달하는 전달체가 필요하다.
그 유전자 설계도가 mRNA고, 그것을 아주 작은 지방 캡슐에 싸서 몸속으로 배달하는 것이 암 백신이다. 팬데믹 기간 모더나, 화이자 등의 mRNA 백신도 똑같은 원리였다.
다만 mRNA 백신이 코로나바이러스 안에 포함된 단백질 조각의 유전자 설계도를 몸속에 넣어주는 방식이었다면, 암 백신은 바이러스 대신 암세포의 단백질 조각의 설계도를 넣어주는 것만 달라졌다. 앞으로 바이러스 백신처럼, 암 백신을 둘러싼 제약 회사간 경쟁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첫 타깃이 흑색종인 이유
암 백신에 쏠리는 기대의 뿌리는 범용성이다. 임상시험에서는 흑색종 환자에게 투여했지만, 이론대로라면 위암, 폐암, 방광암, 신장암, 췌장암 등 재발 위험이 있는 모든 암을 앓는 환자에게 쓸 수 있다. 개별 환자의 암세포에 포함돼 있는 좀비 단백질 조각을 암 백신으로 넣어줘 면역세포를 학습시키는 방법은 똑같기 때문이다.
다만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암세포에 들어 있는 수많은 좀비 단백질(항원) 가운데 어떤 것이 효과적으로 면역세포의 표적이 되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돌연변이가 많은 흑색종, 폐암, 방광암 등은 좀비 단백질 찾기가 유리하다. 흑색종이 첫 임상시힘 후보가 된 이유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적은 암은 표적으로 삼을 좀비 단백질을 찾기 어렵다.
암 백신이 실제로 암 환자에게 널리 쓰이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이뿐만 아니다. 이 암 백신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재발 위험이 큰 암 환자다. 그 환자의 암세포에서 좀비 단백질을 찾고 나서, 맞춤형 암 백신을 만드는 과정은 시간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환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상품이 그렇듯 개인 맞춤형은 비싸기 마련이다. 암 환자로 등록하자마자 암세포 안의 좀비 단백질을 찾아서 암 백신을 만드는 일이 일상이 된다면 모더나와 머크 같은 제약사 수익은 늘어나겠지만 암 환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 개인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일단 경쟁은 시작됐다. 모더나, 바이오엔테 크뿐 아니라 국내 기업도 개발에 뛰어들었다. 암을 정복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하다. 하지만 수술대에서 내려온 환자가 재발을 덜 두려워 하게 되는 일이라면, 10년 안에 가능할 수도 있다.
출처: 이코노미 20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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